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안녕하세요

by 일상의온기 2026. 10. 1.

우리 계룡시에는 아주 흥미롭고 커다란 역사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조선의 첫 번째 수도가 한양이 아니라 우리 계룡이 될 뻔했다는 이야기입니다.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3년, 무학대사와 함께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나섰다가 계룡산 남쪽 자락의 경치와 기운에 반하게 됩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 확신한 이성계는 즉시 이곳을 새 수도로 정하고 대규모 궁궐 건설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인부와 석수들이 모여들어 돌을 다듬고 주춧돌을 세우느라 계룡산 일대는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공사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이 작업화를 털며 쌓인 흙이 작은 언덕이 되었다는 ‘신털이봉’, 그리고 인부들이 밥을 해 먹으려고 솥을 걸었던 자리인 ‘암용추와 숫용추’ 주변의 갖가지 민담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지요.하지만 공사가 약 1년 정도 진행되었을 즈음, 경기좌우도 관찰사 하륜 등이 "계룡산은 지형이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고, 물길을 통한 물자 수송이 어렵다"라는 강력한 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결국 이성계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공사 중단 명령을 내렸고, 조선의 도읍지는 한강이 흐르는 한양(서울)으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이때 '새로운 도읍지 후보 터'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신도안(新都案)’입니다. 만약 그때 하륜의 반대가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 역사책에는 조선의 600년 수도가 바로 이곳 계룡시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신도안면 부남리 일대에는 태조 이성계가 세우다 남겨둔 왕궁의 주춧돌(신도초석)들이 남아 있어, 600여 년 전 수도 이전을 꿈꿨던 계룡의 원대한 역사를 조용히 전해주고 있습니다.